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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민간인학살' 신기철 소장님 [2017 출판도시 인문학당]
작성일 2017-06-10 오후 4:43:11 조회수 3321
작성자 안세원 이메일 angelico.asw@gmail.com

 

역사 서술에 있어 역사가의 관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누가 왜 그 이야기를 썼는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지요. 한국전쟁에 대해 말할 때 금기시 되는 것들 - 패전, 민간인의 죽음, 남북전쟁이 아니라 남남전쟁으로 보이는 전투들 - 에 대해 말씀하시며 신기철 소장님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2017년 6월 6일 오후 2시 '평화를 품은집'에서 열린 출판도시 인문학당 세번째 강연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활동하셨고, 현재 '인권 평화 연구소' 소장이신 신기철 소장님의 강연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까지 3년간 지속된 한국전쟁(6.25전쟁)은 한반도를 폐허로 만들고 그 안에 힘겹게 살아가던 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가족과 생활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슬픔이 가득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신기철 소장님에 의하면, 한국전쟁 전부터 이미 남한 땅에는 '국민공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 정판사 사건, 대구 10월, 제주 4.3, 여순 항쟁, 숙청된 육군과 해군, 국민보도연맹 등 이미 전쟁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의 정황에 대해서는 국방부의한국전쟁사와 브루스 커밍스의한국전쟁의 기원』, 백선엽 당시 1사단 사단장의 회고록, 인민군 6사단 장교였다가 전향한 최태환씨의 회고록인젊은 혁명가의 초상』등을 토대로 여러 관점에서 설명해 주시며, 과연 전쟁의 시작이 기습이었을지 유도였을지 입체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국 전쟁의 금기 중 하나인 '민간인의 방치'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는데, 1950년 6월 27일 도망간 이승만 대통령과 한강 인도교를 폭파함으로 많은 피난민들이 이동할 수 없게 했던 상황들을 돌아보며, 과연 이승만 정부에게 국민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했습니다. 


한편, 전쟁은 곧 학살의 시작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비상사태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이 공포되었고, 대전, 공주, 진주, 경산 형무소의 제소자들 - 이미 잡아 놓은 정치범들 - 이 학살되었습니다. 1차로는 정치범들이 학살되고, 2차로는 국민보도연맹원들이 학살되었습니다.

 

수복 후에도 13만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무정부 상태에서 각각의 지역에서 만든 치안대가 서로 죽이는 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한 예가 '오금리 똥구덩이 사건'으로 동네 치안대를 '빨갱이'라며 태극단이 학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실제 빨갱이였는가에 대해 실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 조사하신 내용을 들려주셨는데 대부분은 혐의가 없었고, 주로 가족이 좌익인 분들이 많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신소장님께서는 전쟁의 참상을 재조명해야 함과 피해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봐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특히, 낙동강 전선에서 돌아가신 20만명의 북한군 중 80%가 남쪽에서 동원된 의용군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전투는 남과 북의 전투가 아니라 남과 남의 전투였던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전쟁 중에 있습니다. 다시는 이러한 비참한 상황이 이땅에서 아니 지구상 어느곳에서도 발생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작은 걸음이더라도 어떤 방향으로 내딛어야 할까요. 

 

 



강연자료: 첨부파일 참조(ppt_평화를품은집_20170606.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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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t_평화를품은집_20170606.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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