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평화도서관 > 평화책 이야기
평화책 이야기
새벽
작성일 2016-02-03 오후 12:45:51 조회수 2271

     새벽/ 유리 슐레비츠 / 시공사

 

망원경 속 렌즈를 들여다 보는 느낌이다
첫 페이지를 열었다.
“조용하다”고 적혀 있다. 작은 동그라미 안에 굵은 선하나가 그어져 있다.
밤하늘을 표현한 걸까?
그 다음 페이지를 넘긴다.
“고요하다”라고 적혀 있다. 앞 페이지의 동그라미보다 조금 더 큰 동그라미 속에
직선의 굵은 선이 낮은 봉우리 모양으로 변해있다.
조용함과 고요함은 무엇이 다른 걸까?
그 다음 페이지엔 “싸늘하고 축축하다”라고 적혀 있다.
동그라미는 훨씬 더 커져 있고 낮은 봉우리 모양을 하고 있었던 산은 제법 산 모양을 갖추고 호수 안에 그림자마저 드리우고 있다. 호숫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가 호젓이 서 있다.
갈수록 움직임이 느껴진다.
동그라미가 커졌을 뿐이고 반경이 넓고 높아졌을 뿐인데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 같다.

 

호숫가 나무아래 할아버지와 손자가 담요 속에서 웅크리고 잔다.
달빛은 나뭇가지를 비추고, 이따금 나뭇잎 위로 부서진다.
산은 어둠속에서 말없이 지키고 서 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림은 충실히 택스트를 보충해 주고 있고
어둠속에서 말없이 지키고 서 있는 산의 모습은 듬듬하다 못해 신령스럽다.
동그라미의 크기는 어느덧 두 쪽을 다 차지할 정도로 확대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렌즈속의 풍경이 아니다.
밖으로 나온듯한 느낌
산과 하늘과 산 그림자의 거대함이 인간을 흙 속에 묻어버릴 듯이  작게 보이게 한다.
왼쪽 나무아래 여전히 할아버지와 손주는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깊은 잠에 빠져있다.

 

아. 실바람
호수가 살며시 몸을 떤다.


호수가 살며시 몸을 떤다.
내 가슴도 떨린다.
가벼운 파동이 손가락 끝에 와 닿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잔물결들이 나선을 그리면서 퍼져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실바람은 무엇을 깨우고 싶었던 걸까?
손가락 끝으로 살짝 밀었는데 도르레가 넘어지는것처럼 물결이 밀리는 모습이 보인다.
실바람은 장난꾸러기...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살짝 설렌다.

 

느릿하게 나른하게,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눈부시다.
물 안개가 산 그림자를 삼켜 버렸다.
마치 무대 위의 배우가 바뀐것처럼....

 

외로운 박쥐 한 마리, 소리 없이 허공을 맴돈다.
개구리 한 마리, 물로 뛰어든다.

그리고 또 한 마리가.
다시 렌즈속으로....
작은 동그라미 안에 박쥐 한 마리가 하늘을 날고 있고
개구리한 마리가  먼저 호숫로 뛰어든 무언가의 뒷모습을 쫓고 있다.
텍스트에서는 개구리라 한다.

 

새가 지저긴다.
어디선가 회답하는 새 소리
할아버지가 손자를 깨운다.


인간을 깨우는 소리는 여기서 부터이다.
새벽이 열리는 소리는 이렇게 긴 준비를 하는데
우린 늘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는 표현을 쓴다.
새벽은 밤부터 준비를 하는데
우리는 늘 새 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이 새벽이라 기억해 왔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잔잔한 준비들이  이 세상엔 참 많이도 존재한다.

 

두 사람은 호수에서 물을 길어 오고
조그만 모닥불을 피운다.
담요를 개고
낡은 배를 물속으로 밀어 넣는다.
배가 호수 한가운데로 고즈넉이 나아간다.
노는 삐걱대며, 물결을 헤친다.
한순간
산과 호수는 초록이 된다.


잠에서 깨어난 산은 밝은 초록색과 큰 몸집을 자랑하며
호수의 절반을 당당하게 자기의 그림자로 채운다.
군더더기 없고  경쾌한 초록빛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당당하다는건
듬직하다는건 이런 느낌일까?

오랜 시간을 공들이고 준비해 온것은 이렇게 명료하게 당당할 수 있는지도..

한 치의 주저함도 없다.

그저 깔끔한 초록...
호수마저 초록으로 물들인 산의 당당함


햇님이 들기전
아침과 새벽사이의 산은 아마도 저런 모습 일런지도....
새벽....
이런 새벽이 보고 싶어졌다.
모든 것이 멈춘 듯이 둔탁한 시간을 지나 바람이 산과 호수와 나무들에게 살랑살랑 아침 인사를 하는 그런 새벽을 한 번 맞이해 보고 싶어졌다.

 

발끝부터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열리는 느낌

이런걸

오감이 열린다고 하는 걸까?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어떻게 볼까 궁금하다.

싸늘하고 축축하다는걸 아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좋은 잉크로 인쇄된 '새벽'이 갖고 싶어졌다.

내가 가진 2000년도 발행 시공사 책은

좀 후졌다.

시공사는 돈 벌어 다 뭐하나????

이런 작품에 좋은 종이 좋은 염료 팍팍 쓰면 얼마나 좋을까.... 

 


이전글 그길에 세발이가 있었지
다음글 할아버지의 안경